※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

 

브로니웨어 책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중에서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5.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3가지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지낸 일생을 회고하면서 보편적으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 :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쥐어봐도 별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 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랍니다.

둘째 :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하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고 합니다.

 

※ 인간이 죽을 때 제일 많이 하는 후회

1.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

2. 어떤 하나에 몰두해 보지 않은 것.

3. 좀 더 도전적으로 살지 못한 것.

4. 내 감정을 솔직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

5. 나의 삶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

6.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7. 친구들에게 더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

8. 자신감 있게 살지 못한 것.

9. 세상의 많은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

10. 결국 행복은 내 선택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는 것.

 

※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가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의료 전문의입니다.

암 말기에는 신체적 고통도 심하지만 마음에서 오는 고통이 더 심한데, 마음의 고통은 대부분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후회를 먹고 사는 생물이다. 환자들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화환을 품는다. 누구나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의 정도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많은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누구나 느끼는 후회, 인생에서 풀지 못한 숙제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그 공통분모를 여러 사람과 나누고자 한다, 25가지는 이렇다.

1. 사랑하는 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2.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3.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4.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11.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12.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 두었더라면,

13.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14.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15.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16. 결혼했더라면,

17. 자식이 있었더라면,

18.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19.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20.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 죽을 때 후회하는 7가지

미국 호스피스 의사 카렌 와이어트의 조사에 의하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돈의 많고 적음과 직위 고하, 인종, 나이와 상관없이 죽음 앞에서야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고 한다. 그의 저서 '일주일 남았다면'에서, 임종 환자들이 죽기 전에 크게 후회하는 7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마음껏 사랑해볼걸

마음에 남는 연애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큰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던 환자들의 얼굴은 상당히 온화했다.

2. 걱정은 내려놓고 행복을 만끽할걸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변화를 선택하지 못했고, 튀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산 것을 후회했다.

3. 조금만 더 일찍 용서할걸

죽음이라는 큰 산 앞에 놓이게 되면 가족과의 갈등 등은 아주 사소한 일이 돼버린다. 가족들이 내게 잘못한 일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더 일찍 용서하지 못한 일에 대해 후회했다.

4.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걸

많은 환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연주자를 꿈꾼 한 말기 암 환자는 병동에서 불철주야 연습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연주회를 열었다.

5. 아등바등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걸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 등을 하면서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일을 크게 후회했다.

6.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면서 살걸

욕심을 내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게 살면서, 남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자선을 베풀지 못하며 인색하게 산 것에 대해 후회했다.

7. 몸을 소중히 하며 살걸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한결같이 '평소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겼으면 지금 내가 아프지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 그밖에 후회하는 것들

-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 고향에 자주 찾아가지 않았던 것

-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

-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

-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

- 아이를 결혼시키지 않았던 것

-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 유산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않았던 것

-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보내지 않았던 것

- 자신이 살아온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

-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 담배를 끊지 않았던 것

-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던 것

- 악행에 손댄 일

- 자신을 제일이라고 믿고 살아 온 것

- 생애 마지막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던 것

- 감정에 좌지우지돼 일생을 보내 버린 것

​​

 

※ 시간 지나면 꼭 후회되는 33가지

​​

1. 기회가 왔을 때 여행하지 않은 것.

2.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던 것.

3. 악연을 남겨 두는 것.

4.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던 것.

5. 어떤 일을 무서워한 것.

6.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7. 남성/여성 역할에 갇혀서 산 것.

8. 끔찍하게 싫은 직업을 그만두지 않은 것.

9. 학교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

10.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 것.

11.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12. 부모님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

13. 젊은 시절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었던 것.

14.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나치게 신경 쓴 것.

15.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꿈을 더 우선시한 것.

16. 더 많이 움직이지 못한 것.

17. 원한을 품고 살았던 것.

18. 당신 자신을 옹호하지 않은 것.

19. 치아를 무시한 것.

20. 할머니/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

21. 너무 열심히 일만 한 것.

22. 멋진 요리 하나를 배우지 않은 것.

23. 감사한 순간을 위해 잠깐 멈추지 않았던 것.

24. 시작한 것을 끝마치지 못한 것.

25. 사회적 기대에 맞추어 당신을 가둔 것.

26.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주지 못한 것.

27. 한 번도 큰 위험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

28.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힐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

29. 너무 많은 걱정을 했던 것.

30. 쓸데없는 드라마에 빠져있었던 것.

31. 사랑하는 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것.

32. 많은 사람 앞에서 한 번도 공연해보지 못한 것.

33. 좀 더 빨리 감사해하지 않았던 것.

 

 

 

시름의 해 가고 새해 밝았네

 

                                                                 중국 당나라 때의 전설적인 은자로 알려진 한산자(寒山子)

 

세거환수년(歲去換愁年) - 해가 가면서 시름도 몰고 갔네

춘래물색선(春來物色鮮) - 봄이 오매 만물의 빛도 고와라

산화소록수(山花笑綠水) - 산에 핀 꽃은 푸른 물 보며 웃고

암수무청연(巖樹舞靑煙) - 바위의 나무는 푸른 연기 속에 춤추네

봉접자운락(蜂蝶自云樂) - , 나비는 마냥 즐겁다 노래하고

금어갱가련(禽魚更可憐) - , 물고기는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네

붕유정미이(朋遊情未已) - 벗 삼아 노는 정 끝이 없나니

철효불능면(徹曉不能眠) - 밤을 지새우며 잠들 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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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시(七步詩)


조식(曺植)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 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上煎何太急(상전하태급) : 어찌 그리 심하게 볶아 대는지.

 

이 시는 역사상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그만큼 문헌에 따라 자구(字句)가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조식은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뛰어나 조조의 총애를 받은 반면 형님인 조비(曹丕)의 질시와 견제를 심하게 받았다. 조비는 나중에 왕위에 올라 위()나라의 문제(文帝)가 된 사람이다. 조비는 구실을 붙여 조식을 해칠 요량으로 일곱 걸음 안에 시를 한편 지으라고 하고 못 지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도저히 못 지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식은 천천히 7걸음을 걸으며 이 시를 지어냈다. 내용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원래 콩대는 주로 땔감으로 사용하므로 콩을 삶을 때도 당연히 콩대를 태워서 한다. 콩이 삶아질 때는 콩 속의 수분이 눈물처럼 미어져 나온다. 콩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한 뿌리에서 난 사이인데 콩대가 자신을 삶아대니 야속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정황을 형제간에 못살게 들볶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조비는 이 시를 보고 부끄러워하며 동생 조식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연 도 별 사 자 성 어

연도

사자성어

풀이

2015

昏庸無道(혼용무도)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어두울 혼

쓸 용

없을 무

길 도

2014

指鹿爲馬(지록위마)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 윗사람을 농락하여 마음대로 휘두름 위압적으로 남에게 잘못을 밀어붙여 끝까지 속이려 함의 비유.

가리킬 지

사슴 록

할 위

말 마

2013

倒行逆施(도행역시)

거꾸로 가고 거꾸로 행하다. 도리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행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거꾸로 도

갈 행

거꾸로 역

베풀 시

2012

擧世皆濁(거세개탁)

온 세상을 들추어보아도 모두 썩었다는 뜻

들 거

대 세

다 개

흐릴 탁

2011

掩耳盜鐘(엄이도종)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의 비난을 두려워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

나 엄

귀 이

도둑 도

쇠북 종

2010

藏頭露尾(장두노미)

쫓기던 타조가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한 모습을 뜻하는 말로 진실을 숨겨두려 하지만 실마리는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

감출 장

머리 두

이슬 노

꼬리 미

2009

旁岐曲逕(방기곡경)

바른 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을 비유.

곁 방

갈림길 기

굽을 곡

길 경

2008

護疾忌醫(호질기의)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비유.

보호할 호

병 질

꺼릴 기

의원 의

2007

自欺欺人(자기기인)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행위를 비유.

스스로 자

속일 기

속일 기

사람 인

 

 

 

연도

사자성어

풀이

2006

密雲不雨(밀운불우)

짙은 구름이 끼여 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

빽빽할 밀

구름 운

아니 불

비 우

2005

上火下澤(상화하택)

불이 물 위에 놓이고 연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으로 사물이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나타냄. 주역에서 나온 말.

위 상

불 화

아래 하

못 택

2004

黨同伐異(당동벌이)

시비와 곡직을 가리지 않고 자기편은 무조건 동조하고, 상대편은 덮어놓고 공격하여 배척함.

무리 당

한가지 동

칠 벌

다를 이

2003

右往左往(우왕좌왕)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함

오른쪽 우

갈 왕

왼 좌

갈 왕

2002

離合集散(이합집산)

헤어지고 합치고, 다시모이고 또다시 흩어짐.

떼놓을 이

합할 합

모일 집

흩을 산

2001

五里霧中(오리무중)

짙은 안개가 5리나 끼어 있는 속에 있다.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종적을 알 수 없음.

다섯 오

마을 리

안개 무

가운데 중

 

狗猛酒酸(구맹주산)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

개 구, 사나울 맹

술 주, 초 산

 

焚舟破釜(분주파부)

배를 불사르고 솥을 부순다.

불사를 분, 배 주

깨뜨릴 파,가마 부

 

似是而非(사시이비)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

같을 사, 옳을 시

말이을 이, 아닐 비

 

竭澤而漁(갈택이어)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고기를 잡는다.

다할 갈, 못 택

말이을이, 고기잡을어

 

危如累卵(위여누란)

달걀을 포개어 놓은 것과 같은 몹시 위태로운 형세

위태할 위, 같을 여

묶을 누, 알 란

 

刻舟求劍(각주구검)

미련하여 융통성이 없다

새길 각, 배 주

구할 구, 칼 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 호 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느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긴 먹었느냐

 

그대는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인지

왜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볼 수 없는 세계인지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

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는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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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 정 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푸 른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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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격언

 

1. 말이 많으면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필요 없는 말이 섞여 나온다.

원래 귀는 닫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입은 언제나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2.

돈이 생기면 우선 책을 사라.

옷은 해어지고, 가구는 부셔지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위대한 것들을 품고 있다.

 

3. 행상의 물건

행상의 물건을 살 때에는 값을 깎지 마라.

그 물건을 다 팔아도 수익금이 너무 적기 때문에

가능하면 부르는 그대로 주라.

 

4. 대머리

대머리가 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 머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더 관심 있다.

 

5. 광고

광고를 다 믿지 마라.

울적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광고하는

맥주 한 잔에 그렇게 변할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은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6. 허허허

잘 웃는 것을 연습하라.

세상에는 정답을 말하거나 답변하기에

난처한 일이 많다.

그 때에는 허허 웃어 보라.

뜻밖에 문제가 풀리는 것을 보게 된다.

 

7. TV

텔레비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

그것은 켜기는 쉬운데

끌 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8. 손이 큰 사람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낭비하는 것은 악하다.

돈을 많이 쓰는 것과

그것을 낭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불필요한 것에는 인색하고

꼭 써야 할 것에는 손이 큰 사람이 되라.

 

9. 화를 내면

화내는 사람이 손해 본다.

급하게 열을 내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대개

싸움에서 지며, 좌절에 빠지기 쉽다.

 

10. 기도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주먹은 상대방을 상처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지만

기도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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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 에밀리 디킨슨 -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If I can...

              - Emily Dickinson -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help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onto his nest,
I shall net live v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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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걸었다.

 나이 60. 침몰하는 배처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괴감,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 극도의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

 걷기가 그를 구원했다. 전쟁과 질병, 맹수가 도사리는 실크로드 1만2000㎞를 단지 두 발로 걷고 또 걸으며 그는 소생했다. 길이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선물했다.
"두 달 뒤면 75세가 된다"며 웃는 이 남자의 이름은 베르나르 올리비에(Ollivier). 전직 기자였던 그는 은퇴 후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西安)에 이르는 1099일의 여행기록 '나는 걷는다'(효형출판) 3부작을 펴내 모국인 프랑스와 유럽은 물론 한국의 걷기 여행자들에게 '구루(guru, 스승)'가 된 사람이다.

 2000년에 설립한 협회 '쇠이유(Seuil·문턱)'는 실크로드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길을 통해 자신이 치유받은 것처럼, 범죄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소년 수감자들을 '걷기'를 통해 12년째 교화하고 있다. "한 아이가 말했다.

 길을 떠나기 전 나는 건달이었으나 돌아온 뒤 나는 영웅이 되었다고." 올리비에가 책의 인세를 모두 쇠이유 협회에 쏟아붓는 이유다.
'2012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초청돼 제주에 온 그를 지난달 30일 서귀포에서 만났다.

이튿날 제주올레 10코스를 함께 걸었다. '혼자 걷기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물었다. 올리비에가 답했다.

"나는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다. 길 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다. 4년간 걸으며 사귄 사람들이 1만명? 아니 1만5000명은 될 것이다."

행복을 파는 상점  
―9개 국어로 번역된 '나는 걷는다'는 프랑스에서만 40만부가 팔렸다. 인세 수익이 꽤 많았겠다.
"인세의 절반은 쇠이유에 주었고, 절반은 세금으로 냈다.

 나는 돈에는 관심이 없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모를까. 행복을 파는 상점은 어디에도 없다."
―'문턱'이라는 뜻의 '쇠이유'를 협회 이름으로 정한 이유는 뭘까.
"문턱은 어디에나 있다. 집에 들어갈 때, 사원에 들어갈 때에도 문턱을 넘는다.

 범죄의 늪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이 문턱을 넘어서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되기를 소망했다."

―걷는 행위가 어떻게 아이들을 변화시키나.

"아이들은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3개월 동안 2000㎞를 걷는다. 하루에 보통 25㎞ 정도 걷는다. 두 달 정도는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눈 속에서 걷는다.

 첫 달 몇 주는 등이 아프거나 발이 아프다며 저항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걷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끝까지 걷고 나면 아이들은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똑바로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준다."

―프랑스 정부와 함께 이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뒀나.

"수감 청소년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행 청소년의 85%가 재범한다고 한다. 그러나 '쇠이유'의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재범률은 15%에 불과하다.

 어떤 방법으로도 변화하지 않는 아이들을 정부는 쇠이유로 보낸다."

―은퇴 후 무엇이 그렇게도 당신을 힘들게 했던 걸까. 자살을 생각할 만큼.

"직장에 다닐 때는 내 자리와 이름과 존재할 이유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연금생활자가 되면서 방향 잡을 키도, 목적지도 없는 구제민이 되어버렸다.

 무기력감,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괴로웠다. 내가 사랑한 아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자식들은 독립해 떠나갔다.

내겐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 걸은 길이 파리에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었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친 뒤 일단 파리를 떠나자고 생각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제자인 야곱이 순례한 길로 유명하지만 나는 종교적 이유로 걷지 않았다.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인 이곳을 걸으면서 역사의 일부가 되어보고 싶었다. 석 달 동안 2300㎞를 걸으면서 걷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매일 20㎞씩 걸으니 내 몸이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주 전만 해도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3주 후 걷기의 즐거움에 빠져버린 거다.

인간이란 걷기 위해서 태어난 동물이란 생각을 그때 했다.

신체의 균형이 잡히면 정신의 균형도 잡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걷기'는 육체의 운동이 아니라 정신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걸으면서 사람들은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러운 바람, 울퉁불퉁한 길, 미모사의 향기처럼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작은 풍경을 관찰하게 된다.

절대 고독 속에서 자신을 탐구하게 되고,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세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우정을 나누고 위안을 받는다.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물속 깊은 곳에서 숨이 차 수면으로 올라오려 발버둥치는 수영 선수와도 같았다.

공기가 간절히 필요했다. 걸으면서 투지가 생겨났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세상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울퉁불퉁한 길을 수천킬로미터씩 걷는다는 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몸이 훈련된 육상 선수처럼 적응할 테니까. 실크로드를 걷기 시작한 지 13일째 되던 날 내 몸의 근육들은 걷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분당 맥박 수도 쉴 때는 60까지 내려갔고 걸을 때에도 85까지만 올라갔다. 예순한 살이었지만, 피로는 즉시 해소됐고, 짐도 덜 무겁게 느껴졌다.

 세포 하나하나마다 취기 같은 게 느껴졌다. 당신도 나처럼 보행자의 열반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웃음)."

실크로드의 기적

―산티아고에서 그치지 않고 실크로드로 간 이유는 뭔가.

"산티아고 도착점을 50㎞ 앞에 두고 그곳에 닿으면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래서 그보다 더 역사가 깊고 거대한 길 실크로드를 떠올렸다.

 미친 모험이란 걸 나도 안다. 내 나이에는 장미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 데 말이다. 더구나 내가 실크로드로 떠났을 땐 터키와 쿠르드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9·11테러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졌고 그로 인해 테러리스트로 숱하게 오인받았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시기에 실크로드를 걷지 않는다. 유서 깊고 아름답고 안전한 길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내가 실크로드를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적인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진정한 세계화는 실크로드에서 시작됐다.

 실크로드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진 길이 있을까.

실크와 값비싼 보물, 향신료 같은 물품이 교역되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찬란한 아이디어들이 교환되는 장소가 실크로드였다.

세계 정복에 도움을 준 나침반, 화약, 종이, 그리고 과학과 사상이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됐다.

유럽인 4명 중 1명을 사망하게 한 페스트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됐다. 참으로 역사적이고 진기하고 놀라운 장소다.

이 길을 완주한 사람은 마르코 폴로와 일부 대사들이겠지만 말이나 자동차가 아닌, 걸어서 완주한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어보니 고생만 엄청 했지, 행복한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대목은 별로 없더라.

"그렇지 않다. 걸을 때보다 걷기를 멈추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을 만큼, 길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우정과 사랑을 베풀었다.

나무꾼 철학자 셀림과 아직도 내게 펜으로 쓴 편지를 보내는 정겨운 할아버지 베흐체트, 내가 굶어 죽을까 봐 내 식량 주머니를 꽉꽉 채워주던 여인들,

일주일만 더 머물다 가라고 붙잡으며 포옹해주던 남자들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때 정말 힘들었다."

―가장 큰 고비는 터키와 이란의 국경에서 이질로 쓰러져 파리로 이송됐을 때일까.

"위험은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 있었다. 한밤중에 자고 있는 나를 잡으러 온 40여명의 군인, 도끼를 들고 나를 죽이겠다고 뛰어다니던 광인,

살기를 띠고 달려들던 맹견 캉갈, 하다못해 발가락의 화농성 염증까지.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유서를 써놓고 온 것이 다행스러웠을 정도다.

그렇다고 내게 닥칠 위험에 무방비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실크로드에 관해 전문가 이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수십장의 지도를 모으고, 터키어와 이란어도 배웠다. 관공서에 미리 도움도 청해놨고. 생명의 안전을 기적에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아파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타게 되면 회복된 뒤 자동차를 탔던 바로 그 자리로 되돌아와 걷더라. 일종의 결벽증 아닐까.

"보는 관점에 따라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고 미친 사람, 편집증 환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 좀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세운 계획에 흠을 내거나 첫 단계부터 얼렁뚱땅 넘기고 싶지 않았다. 걷기는 다른 누구와도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실크로드 최초의 도보 여행자다. 당신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자랑할 일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책을 펴냈다는 건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나처럼 특별한 재능도 없고 소심한 사람도 실크로드를 걸었으니 누구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고 싶었을 뿐이다."

고비사막을 걷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베르나르 올리비에.‘ 윌리스’라는 애칭의 짐수레는 그가 자전거를 사서 개조한 것으로 여행을 마친 뒤 프랑스의 한 박물관에 기증했다. / 효형출판
가난이 준 선물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태어났다.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그는 가난으로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웨이터 일을 하면서

 생업을 이어갔다.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학입시 자격시험)에 합격해 대학에 들어간 게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졸업 후 기자가 된 그는

 '파리 마치''르마탱''르피가로' 등 프랑스의 유수 신문과 잡지사에서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새로운 걸 배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새로운 걸 습득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지.

특종? 물론 많이 써봤다. 특종이 아니라도 기자는 자기가 쓰는 모든 기사를 특종처럼 여기고 써야 한다."

―실크로드를 걸을 때 엉터리 지도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푸념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신 인생의 갈림길도 그렇게 많았을까.

"물론이다. 내 인생의 첫 갈림길은 학교였다.

 집이 너무 가난하니 7남매를 도저히 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데, 선생님이 부모님을 찾아와 베르나르만은 꼭 고등학교에 보내라고 부탁하셨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내가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갈림길은 퇴직 후 계속 살아야 할 것인가, 그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때였다."

―부모님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1929년 대공황이 왔을 때 쫄딱 망한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두 분 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셨다.

그러나 부모님의 가장 큰 미덕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너그러움이었다.

 돈은 없었지만 우리 집엔 늘 사랑이 넘쳤다. 내가 이런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모험가 기질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아올 안식처가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모험을 떠날 수 없다."

―가난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 있다면.

"작은 것에 만족하는 능력."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밑바닥 생업을 전전했다.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나는 굶어 죽지 않겠다는 확신을 그 시기에 얻었다.

뛰어난 적응력은 내가 기자로 일할 때 상당히 유용하게 활용했다."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돌체비타'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보고 기자가 돼야겠다, 결심한 뒤 대입 자격시험을 봤다.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기자란 직업이 그냥 멋져 보였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공부했다. 접시를 닦을 때에도 공사판에서 일할 때에도 나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역사책은 나를 매료시켰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텐데, 굳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뭔가.

"정치부 기자였던 내가 주로 만난 사람들은 정치인, 장관들이었다.

내가 쓴 기사 때문에 친구보다는 적(敵)이 된 경우가 훨씬 많았다(웃음). 비즈니스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과 우정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크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 환대하면서도 그들은 (사랑을 베풀 기회를 준) 나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2002년 중국 시안에서 걷기를 끝낸 뒤 다시 그 나라들에 가본 적이 있는지.

"2005년 다시 실크로드에 갔다.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들이 왜 책에 이미지가 없느냐고 해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려고 9주 동안 자동차로 실크로드를 완주했다. 키르기스스탄에 갔을 때 핫산이란 이름의 목동과 재회했다. 키가 크고 덩치도 산만한 이 사람은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껴안았다.

핫산이 나를 얼마나 세게 껴안았는지 목에 걸었던 내 안경이 박살 나고 말았다. 단지 하룻밤을 잤을 뿐인데, 그는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걷기의 기적이다. 불꽃이 튀는 강렬한 만남이 걷는 동안 이루어진다."

―사진은 왜 싣지 않았나.

"감동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글이다. 내가 독자들에게서 받은 가장 큰 칭찬은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저자의 옆에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의 사진을 실었다면 이런 감동은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는 왜 가져갔나.

"기록하기 위해서. 사막을 건널 때 빼고 하루 10여명의 사람을 만났다.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할 때 나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사나운 날씨에 발이 곪아 터지고 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하루하루의 여정을 치밀하게 기록한 올리비에의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지난달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리비에의 강연에 몰려든 도보여행자들 또한 올리비에의 기록 노하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길에서 만난 꼬마의 이름까지 책에 적을 수 있는 당신의 비결은 무엇인가.

"기자생활을 할 때부터 주머니가 많이 달린 바지를 즐겨 입었다. 주머니 하나에는 여권을 넣고, 다른 하나에는 수첩과 펜, 또 다른 주머니에는 카메라를 넣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름부터 묻고 메모했다. 엄청난 양의 메모를 하고, 엄청난 양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 책은 3권이지만, 메모한 것의 5%도 반영하지 못했다."

―그래도 매 순간 메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실크로드로 떠날 때 자식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실종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고 묻더라. 고심 끝에 약속했다. 저녁마다 편지를 한 장씩 쓰겠다고. 그날 하루 있었던 일, 내가 있었던 장소와 날짜를 적은 편지를 써서 부치겠다고. 만일 내가 실종되면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에 등장하는 장소부터 나를 찾아 나서라고 했다. 여행이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난 뒤에도 메모를 읽고 사진을 보면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혼자 걸어야 하는 이유

31일 아침, 올리비에는 제주올레 10코스를 걷기 위해 모인 수백 명의 사람을 보고 입을 벌렸다.

 '혼자 걸어야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진 그에게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1년에 한 번쯤 이런 걷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웃던 그는 "걷기 열풍은 한국 사회가 성찰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제주올레길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걷기 열풍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다고 말하자 올리비에가 반문했다.

"1년 동안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자동차를 타는 것이 걷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왜 혼자 걸어야 하는가.

"혼자 걸어야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생각도 자유로워진다.

상상력이 부족해졌다고 느낄 때 나는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걷는다."

―실크로드 이후 걸은 길이 또 있을까.

"15일 동안 피레네산맥을 걸었고, 노르망디의 성지 순례길 3000㎞를 걸었다."

―다시 걸을 계획은?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6개월간 걸어볼 생각이다. 처음 실크로드를 완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집이 있던 노르망디에서 중국까지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건상 이스탄불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이번에 그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싶다."

―역시 혼자서 걷겠지?

"아니다. 이번엔 고독이 아니라 다른 감정으로 걷게 될 것 같다.

걷기를 시작한 지 처음으로 동료와 함께 걷는다."

―혼자 걸어야 걷기의 완벽한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 않았나.

"동료가 실은 내 여자친구다. 아내와 사별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사람이다(웃음). 그런데 우리는 걸을 땐 각각 혼자 걷는다.

 걸을 때는 침묵하고 멈추었을 때 대화한다. 서로 침묵을 존중한다."

―당신은 은퇴자들에게 도보여행을 권유하지만, 은퇴자들은 인생 2막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에도 바쁘다.

"2000년 이란 국경을 넘어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4개월간 내가 쓴 돈은 겨우 300달러였다.

 집에 있었다면 더 많은 돈을 썼겠지(웃음). 걷다 보면 인생 후반부, 무한하게 주어진 시간과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영감과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74세에 이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역시 걷기일까?

"매일 아침 30분 이상 걸은 뒤 찬물로 샤워하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당신도 하루 6~7㎞씩 걸으려고 노력해보라. 실크로드도 거뜬히 걷게 될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도보여행자가 될 것인가.

"나는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삶, 환생을 믿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걷는다."

 

기사 원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2/20121102013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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匆 匆 (총 총)

 

朱 自 淸 (주 자 청)

 

燕子去了

제비는 가면

有再來的時候

다시 올 때가 있습니다.

楊柳枯了

수양버들이 마르면

有再靑的時候

다시 푸를 때가 있습니다.

桃花謝了

복사꽃이 시들면

有再開的時候

다시 필 때가 있습니다.

 

但是, 聰明的

그러나 똑똑한 이여,

你告訴我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我們的日子爲什麽一去不復返呢?

우리들의 세월은 왜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건가요?

 

是有人偸了他們吧

어느 누가 그들을 훔쳐갔습니까?

那是誰?

그는 누굽니까?

又藏在何處呢?

또 어디에다 감춰 뒀나요?

是他們自己逃走了吧

그들 스스로 도망간 것인가요?

現在又到了那里呢?

지금은 또 어디에 가 있습니까?

 

我不知道他們給了我多少日子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세월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但我的手確乎是漸漸空虛了

그러나 나의 손은 확실히 점점 공허해집니다.

在黙黙里算着

가만히 계산을 해 보면

八千多日子已經從我手中溜去

팔천여 일의 세월이 나의 수중으로부터 빠져 달아나 버렸습니다.

像針尖上一滴水滴在大海里

마치 바늘 끝의 한 방울 물이 큰 바다에 뚝 떨어진 것과 같이

我的日子滴在時間的流里

나의 세월은 시간의 흐름 속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沒有聲音

소리도 없이

也沒有影子

그림자도 없이

我不禁汗涔涔而淚潸潸了.

나는 땀이 흐르고 눈물이 흐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去的盡管去了

가는 것은 아무런 구애됨이 없이 가고

來的盡管來着

오는 것 역시 아무런 구애됨이 없이 오고 있습니다.

去來的中間, 又怎樣地匆匆呢.

가고 오는 사이가 또 어쩌면 이렇게도 빠른지요.

早上我起來的時候

아침에 내가 일어날 때면

小屋里射進兩三方斜斜的太陽

작은 방안으로 두 세모의 비스듬한 햇빛이 비쳐 들어옵니다.

太陽他有脚啊, 輕輕悄悄地挪移了

햇빛은 발을 가지고 있어서 살그머니 옮겨갑니다.

我也茫茫然跟着旋轉.

나도 멍하게 그를 따라 돌아갑니다.

於是, 洗手的時候

그리하여 손을 씻을 때면

日子從水盆里過去

세월은 세숫대 속으로 지나가 버리고

 

吃飯的時候

밥을 먹을 때면

日子從飯碗里過去

세월은 밥그릇 속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黙黙時

멍하니 있을 때면

便從凝然的雙眼前過去

멍한 두 눈 앞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我覺察他去的匆匆了

세월이 지나감이 너무 빠른 것을 알고는

伸出手遮挽時

손을 내밀어 가로막을 때면

他又從遮挽着的手邊過去

그는 또 가로 막고 있는 두 손을 스쳐 지나가 버립니다.

天黑時, 我躺在床上

날이 어두워 침대에 누우면

他便伶伶俐俐地從我身上跨過

그는 또 영리하게도 나의 몸 위를 가로 질러

從我脚邊飛去了

다리 사이로 지나가 버립니다.

等我睜開眼和太陽再見

눈을 떠서 태양을 다시 보게 되면

這算又溜走了一日

그것은 또 하루가 지나가 버린 셈이 됩니다.

我掩着面歎息

나는 얼굴을 가리고 탄식을 합니다.

但是新來的日子的影兒又開始在歎息里閃過了.

그러나 새로 오는 세월의 그림자는 탄식하고 있는 중에 또 번개같이 지나가기 시작합니다.

在逃去如飛的日子里

날아서 도망 하는 것 같은 세월 속에

在千門萬戶的世界里的我能做些什麽呢?

수많은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祗有徘徊吧了

단지 배회할 뿐이며

祗有匆匆吧了

단지 바쁠 뿐입니다.

 

在八千多日的匆匆里

팔 천 여일의 세월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除徘徊外

배회하던 것을 제외하고 나면

又剩些什麽呢?

또 뭐라도 좀 남긴 것이 있습니까?

過去的日子如輕煙

지난 세월은 마치 가벼운 연기와도 같이

被微風吹散了

미풍에 날아 가 버렸고

如薄霧,

엷은 안개처럼

被初陽蒸融了

아침 햇살에 증발되어 버렸는데

我留着些什麽痕迹呢?

나는 어떤 흔적이라도 남긴 것이 있습니까?

我何曾留着像游絲樣的痕迹呢?

나는 거미줄 따위의 흔적이라도 남긴 적이 있습니까?

我赤裸裸來到這世界

나는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다가

轉眼間也將赤裸裸的回去吧?

눈 깜박할 사이에 또 벌거숭이로 돌아가야만 하겠지요?

但不能平的,

그러나 공평하지 못한 것이여

爲什麽偏白白走這一遭啊?

왜 헛되이 이렇게 지내야만 합니까?

 

你聰明的

똑똑한 당신이여

告訴我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我們的日子爲什麽一去不復返呢?

우리들의 세월은 왜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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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그림

죽을 때 세 가지 후회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쥐어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랍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하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라고 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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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어느 작은 성당 벽에 적혀 있다는 글.

 

 

너희는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하지 마라.

<늘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라고 말하지 마라.

<늘 혼자만을 생각하면서>

 

'아버지' 라고 말하지 마라.

<한 번도 아들딸로 산 적이 없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고 말하지 마라.

<늘 자기 이름을 빛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라고 말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말하지 마라.

<늘 내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고 말하지 마라.

<먹고살 재산을 다 축적해 놓았으면서>

 

 

'저희가 용서하듯이' 하고 말하지 마라.

<늘 미움과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지 마라.

<늘 죄지을 기회를 찾으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면서>

 

 

'아멘' 이라고 응답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친 적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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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었다.

 

 

- 양귀자 <모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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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고도 경주에 가시면  옛날 요석궁터인데

      지금은 성균관 바로 옆 경주 최부자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가문은 선대의 가훈을 잘지켜 5대에 걸쳐 만석꾼의 큰 부자로 살아 왔다고 하네요.

      그 집안엔 특별한 가훈이 있어 소개합니다.

      

      그 가훈을 가르켜 육연(六然)과 육훈(六訓) 이라 합니다

      

          자처초연(自楚超然)

        대인애연(對人靄然)

        무사징연(無事澄然)

        유사감연(有事敢然)

        득의담연(得意淡然)

        실의태연(失意泰然)

 

       이 육연으로 수신(修身)의 철학으로 삼고 행하였다 하네요.

 

       그리고 육훈은 .

       그 첫째는 제가(濟家)의 철학으로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그 둘째는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 하라.

       그 셋째는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것이며.

       그 넷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하였다.

       그 다섯번째는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하고.

       그 여섯번째는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

 

      육훈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명부(名富)의격조와 품격을 볼수 있다 하였다.

      속담에 부자 3대 못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 가문은 9대동안 진사를 지냈고

      12대 동안 만석꾼을 했다하네요.

      그러다 12대를 내려온 만석꾼의 재산 마저도 마지막에는 영남대학 재단에 모두

      희사 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실현했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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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나가겠습니다.

 

-윤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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